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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칼럼〕 주당도 집에 들어가면 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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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7.24 06:57
 
 
세상 사람들은 술을 즐기고 술맛을 아는 사람을 주당酒黨이라고 한다. 예부터 주당은 단순히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술의 멋과 풍류를 알고, 술잔에 담긴 사람의 정을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아무리 이름난 주당이라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만큼은 모두 같은 모습이다. 술자리에서는 천하를 얻은 듯 호탕하게 웃고 큰소리로 건배를 외치던 사람도 집 앞 골목에 이르면 걸음걸이가 저절로 조심스러워진다. 옷깃에 밴 술 냄새를 털어내고, 커피 한 잔으로 입 냄새를 감춘다. 박하사탕을 입에 넣거나 껌을 씹으며 한동안 골목을 서성이기도 한다. 현관문 앞에서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집 안의 불빛과 분위기를 살피는 것이 오래된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다. 술자리에서 그토록 당당하던 사람이 집 앞에서는 가장 겸손한 사람이 되는 모습은 어쩌면 세상 모든 주당의 공통점이다.
 
이런 모습은 단순히 아내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다.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술자리가 끝난 뒤에도 집에서 저녁을 차려 놓고 기다리는 아내가 있고, 아버지의 발소리를 기다리다 잠든 아이가 있다는 것이 주당을 미안하게 만든 것이다. 술은 잠시 세상의 근심을 잊게 해 주지만, 가족을 향한 책임까지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진정한 주당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 이전에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시“막걸리 한 됫박”은 술의 의미를 따뜻하게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막걸리 한 됫박이 이 세상에 없다면 세상은 되게 추울 거야.’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술이 없으면 세상이 삭막하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 주는 위로와 인간적인 정이 사라질 것이라는 의미다.
 
하루 종일 논밭에서 땀 흘린 농부는 저녁 무렵 막걸리 한 사발 앞에서 굽었던 허리를 펴고 하루의 피로를 내려놓는다. 공사판 노동자는 거친 손으로 사발을 감싸 쥔 채 묵직한 한숨을 술과 함께 삼킨다. 퇴근길 직장인은 포장마차 낡은 목의자에 걸터앉아 막걸리 한 잔과 함께 상사의 꾸중도, 세상의 서러움도 잠시 잊는다. 친구를 먼저 떠나보낸 사람은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술잔에 눈물을 떨어뜨리고, 외로운 사람은 술잔을 기울이며 자신의 삶을 위로한다. 시인이 말한 막걸리 한 됫박은 쌀로 빚은 술이 아니라 서민들의 땀과 눈물, 웃음과 한숨을 담아낸 삶의 그릇이다.
 
막걸리는 화려하지 않다. 값비싼 와인처럼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고급 양주처럼 격식을 차리지도 않는다. 사발 하나면 충분하다. 술상 위에 김치 한 접시와 두부 한 모만 있어도 사람들은 웃고, 인생을 이야기한다. 술 한 사발을 나누는 사이 처음 만난 사람도 친구가 되고, 오랫동안 마음에 두었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막걸리를 마신다는 것은 술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술도 절제를 잃으면 본래의 의미를 잃게 마련이다. 위로를 주어야 할 술이 다툼의 원인이 되고, 웃음을 주어야 할 술이 눈물을 만들기도 한다. 술은 사람을 악하게 만들거나 나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람 안에 숨어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울과 같다. 절제하는 사람에게는 술이 벗이 되었지만, 절제를 잃은 사람에게는 술이 주인이 된다.
 
참된 주당은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 술을 술답게 마시는 사람이다. 술을 술답게 마신다는 것은 술의 양을 조절할 줄 알고, 함께하는 사람을 배려하며, 술자리가 끝난 뒤에도 가족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것이다.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의 마음이 귀하고, 가족의 믿음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아는 주당이야말로 진정한 주당이라고 할 수 있다.
 
주당의 품격은 술자리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귀가한 뒤 가족에게 웃음을 안겨 주는가, 아니면 걱정을 안겨 주는가에서 판가름 난다. 술은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더욱 가깝게 이어 주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 술잔 하나에도 배려가 담기고, 절제가 담기고, 사랑이 담길 때 비로소 술은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문화가 된다.
 
세상 모든 주당은 집에 들어서는 순간 다시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야 한다. 술은 밖에서는 풍류와 흥취를 만들어 주지만, 가정은 인생의 뿌리이자 삶의 중심을 지켜 주는 울타리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술을 아는 사람은 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할 줄 알며, 술잔을 비울수록 가족의 행복만큼은 더욱 채우려 애써야 한다. 절제와 배려가 있을 때 술은 취함이 아니라 정을 나누는 문화가 된다. 주님酒-의 기적은 술잔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술잔을 내려놓은 뒤 가족을 향한 사랑과 책임을 다하는 삶에서 완성된다. 술은 사람의 마음을 열어 주지만, 가족은 열린 마음을 따뜻하게 품어 준다. 술의 마지막 잔은 가족의 웃음으로 이어질 때 가장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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